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帽儿胡同韩文介绍

作者:佚名    文章来源:本站原创    更新时间:2016/5/11

帽儿胡同韩文介绍
모아후퉁(帽兒胡同)
모아후퉁(帽兒胡同)은 베이징 10대 후퉁 중의 하나로 유명한 곳이다. 그 이름은 '모자의 거리'라는 뜻으로 곡루(皷樓)와 지안문(地安門) 사이에 동서방향으로 뻗었다. 후퉁 동쪽 입구에 세워진 간판 소개글에 따르면 모아후퉁의 길이는 585m로 명나라 시기에 재동묘(梓潼廟) 문창궁(文昌宮)이라 불렀는데 청나라 때 모자 가게가 들어앉으면서 모아후퉁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베이징 중축선에 놓인 지안문외대가(地安門外大街)와 원나라때 건설된 유명한 후퉁 남라고항(南鑼鼓巷)과 연결된 모아후퉁은 현재 베이징에 있는 25개 후퉁 보호지역 중 사합원이 가장 많고 옛 모습이 가장 잘 보존돼 있는 곳이다. 또한 후퉁은 주변 번화가와 연결돼 있어 고급 차량이 자주 드나들어 이곳을 거닐다 보면 과거와 현재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묘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베이징 토박이 어른신들은 "동단(東單), 서사(西四), 고루전(鼓樓前)"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바로 옛 베이징성의 가장 번화한 세곳을 가리키는데 그중에서도 고루가 베이징의 특색이 가장 다분한 대표적인 곳이라 할수 있다. 그 이유는 건축이 웅장하고 고풍스러우며 인파가 많아 흥성하다는 것 외에도 옛 베이징성 중축선의 북쪽 끝이라는 점이다. 고루는 지안문(地安門), 경산(景山), 고궁(故宮), 천안문(天安門), 전문(前門), 영정문(永定門)과 함께 전체 원대도(元大都)를 하나의 축으로 연결한다.

모아후퉁에 앞서 동쪽 입구와 연결된 남라고항을 알아야 하는데 남라고항은 원대도와 같은 시기에 건설됐고 원나라 이후 시기별 다양한 풍격의 건축을 보존하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역사적으로 명성과 직위가 높은 유명인들이 생활했다.

남북방향으로 놓여있는 남라고항은 동,서 양쪽으로 16개의 후퉁이 연결되어 있으며 이 지역에는 도합 20여개 문화재가 보존돼 있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지안문대가로 직통하며 가장 긴 후퉁이 바로 모아후퉁이다. 한편 모아후퉁은 남라고항과 연결된 16개 후퉁 중 문화재가 가장 많을 뿐만 아니라 사합원 건축 수준과 역사적 가치가 가장 높은 곳이다.

모아후퉁의 역사, 문화적 가치는 지리적 위치와 문화재, 그리고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 더 돋보인다. 이 후퉁은 베이징의 옛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골목이고 또 베이징을 이해하는 생생한 현장이기도 하다.

帽儿胡同 
모아후퉁에는 원래 명나라 성화(成化) 연간에 축조된 문창제군묘(文昌帝君廟)가 있었다. 당시 문창제군묘는 산문(山門), 전전(前殿), 중전(中殿), 후전(後殿), 동원(東院) 등 건축이 있었다. 그리고 전전은 "괴성각(魁星閣)"이라 불렀고 "괴성점투(魁星点斗)"상을 모셨다. 중전은 "문창궁(文昌宮)"인데 "문창제군(文昌帝君)"을 공봉했다. 문창제군은 중국 도교의 신으로 문창성(文昌星), 문곡성(文曲星)이라고도 부른다. 민간에서는 문창제군을 인간 세상의 학문을 다스리는 신으로 모셨고 소원을 빌면 과거에 급제한고 믿었다. 문창제군묘는 사라진지 오래며 지금은 모아후퉁초등학교가 들어앉았다.

베이징에서 사합원이 집중된 후퉁 중의 하나인 모아후퉁에는 크고 작은 고택들이 자리하고 있다.

모아후퉁 9번지와 11번지는 청나라 광서(光緖) 연간의 대학사 문욱(文煜)의 저택 "가원(可園)"이다. 이곳은 5개 정원이 병렬된 큰 저택으로 부지 면적이 11,000평방미터에 달한다. 규모가 크고 구성이 엄밀하며 연못과 정자가 있는 가원은 현존하는 사합원 중 보기 드문 개인 저택이다. 그리고 민국시기 군벌인 풍국장이 대리총통으로 부임한 뒤 가원을 사들였다. 1918년에 풍국장이 세력을 잃고 퇴임하면서 모아후퉁에 위치한 이 저택에서 생활했고 1년뒤 병사했다.

또한 모아후퉁에서는 청나라 마지막 황후인 완용(婉容)의 친정집을 찾을 수 있다. 바로 모아후퉁 35번지와 37번지이다. 이 저택은 4진식 사합원으로 대문이 크지 않지만 정원에 들어서면 소주(蘇州)의 원림을 방불케 하는 아름다움이 숨어있다. 완용 황후는 이곳에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보냈다.

그후 주가진(朱家溍)의 아버지 주문균(朱文鈞)이 완용 황후가 살던 이 저택으로 들어왔다. 1922년 부터 1929년 까지 주가진은 이곳에서 동년과 소년 시절을 보냈다. 주가진은 송나라 철학가 주희(朱熹)의 25대손으로 당대 중국의 유명한 학자, 고고학자, 희곡 연구 학자이다. 그의 아버지 주문균은 젊은 시절 영국에서 유학한 지식인으로 고궁박물관 창시인이다. 주문균은 "문화재 업계의 국보"로 불리우며 문화재 소장과 감정에서 조예가 깊다.

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모아후퉁은 세월의 부침 속에서도 본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오래된 담장과 운치있는 가로수길, 오가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 이 후퉁에 서면 베이징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느낄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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